고대사53. 난하, 영정하, 조백산하에 대한 위치와 부근의 지명(펌)
한국의 고대역사 기록은 매우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다. 일반인이 알기 어려우므로 이를 이해하기 쉽고 또 활용하기도 쉽도록 이들 고대 역사의 단편적인 기록에 대한 자료를 모아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자료들이 널리 활용되고 퍼뜨려져서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다는 XXX나 왜색식민사학자들의 잘못된 주장이 반드시 폐기되고, 대륙에 위치해 있던 한사군의 바른 위치가 반드시 밝혀지기를 바란다. 아래는 펌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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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ah33/100024066903
한단고기 ‘태백일사’와 ‘삼국사기’에 표기된 고구려의 강역疆域에 대한 검토-
〈고구려본기〉 6대 태조대왕 3년 요서 지역에 쌓은 성들은 고구려의
핵심 전략요충지였다.
▶〈태백일사〉‘三韓秘記’라는 고대 문헌 인용하여
碣石山갈석산 밑에 백암성이 있으며 이를 당나라에서는 岩州라고 하였다. 건안성建安은 唐山의 경내에 있으며, 그 서남을 개평開平이라 하는데 일명 개평蓋平이며 당나라 때에는 개주蓋州라 하였다.』
※갈석산 현 하북성 난하 하류 동쪽의 창려昌黎에 존재. 당산 난하 서쪽에 있는 지명으로 그 북쪽에는 지금도 개평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음.
※갈석산에 백암성과 요동성이 있었으며, 현재 발행되고 있는 지도에도 창려라고 되어 있음
▶〈태백일사〉요동성은 창려 남쪽에 있다.
하북성 난하 하류의 동쪽에는 지금도 갈석산과 창려라는 지명이 그대로 표기
따라서
▶갈석산 남쪽에 백암성이 백암성 남쪽에 창려가 있었으며 다시 그 남쪽에 요동성이 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모두 하북성 난하(당시 요수)의 동쪽에 있었던 城이다.*㉠
*㉠이 지명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계속해서 동쪽으로 옮겨 온 것들이기 때문에 원래는 더 서쪽에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태백일사〉가 편찬될 시점 명나라 때에는 이미 모든 지명이 동쪽으로 이동해서 고착된 뒤이기 때문에 본서에서도 그 지명에 근거했다.
▶〈삼국사기〉당나라 1차 침공시 당태종 요수(현 난하)를 건너 먼저 요동성을 공략한 뒤
바로 백암성을 공격했다.
이는 현재의 난하를 요수로 표기하고 있는 중국의 여러 고지도 및 문헌과 일치한다.
▶〈삼국사기〉백암성을 공격한 후 다시 건안성과 안시성을 공격하다. 양만춘의 화살에 한 쪽 눈을 잃고 물러갔다.
당태종이 공략했던 건안성과 안시성 역시 난하의 동쪽에 있었는데
☛【특히 안시성은 옛 번조선(번한)의 도읍지인 왕검성王儉城이 있던 성터였다.】
당시 고구려의 중심지로 전략적 핵심 요충지였다.
▶〈삼국사기〉〈태백일사〉건안성은 남쪽에 있고 안시성은 북쪽에 있다.
[출처] 현재 난하 동쪽에 표기된 지명들의 일부|작성자 대마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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