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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자료127. 평양지역에서 일본인 손에서만 발굴되고 쏟아진 낙랑계 유물

글쓴이: 이태수 날짜: 2023-04-04 07:05

고대사127. 평양지역에서 일본인 손에서만 쏟아진 낙랑계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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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1930년대 왜인 관야정(關野貞), 금서룡(今西龍) 등에 의해서 우연히 발견된 대발견이라고 하는 점제현 신사비, 점제현 치소터, 대방군 태수묘, 대방군 치소, 낙랑군 치소터 등의 발견이 실로 모두 우연히 발견된 수확이었다(조선총독부 <고적조사 특별보고. 1927>)“고 일본총독부는 기록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평양 낙랑설을 왜인들은 굳혔고, 이병도는 자신의 책에 점제현 신사비를 올려 일본인들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일제 강점기보다 수 십배 많은 3,000 여기의 고분을 발굴했지만 한사군에 관련된 관심을 끄는 유물은 거의 없었다.

 

북한의 하자 안병찬은 해방 후 2,600 여기의 무덤을 발굴한 결과 일제가 조작한 낙랑군 유물은 없었고, 일제가 조작한 락랑군 평양설은 완벽하게 무너졌다고 주장했다.

 

또한 북한 학자 박진욱은 <낙랑 유적에서 드러난 글자있는 유물에 대하여>(조선고고연구 1995년 제4)에서 ”1995년 낙랑토성에서 해방전 봉니가 가장 많이 나왔다고 하는 곳을 300나 발굴하여 보았지만 단 1개의 봉니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하고 있다.

 

낙랑토성 뿐 아니고, 운성리 토성, 소라리 토성, 창해 토성 등 왜인이 발굴했던 토성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하였다.

 

<문성재. 한사군은 중국에 있었다. 297-298p 참고>

 

>**필자 주: 평양에서 발견했다는 많은 유물은 당시 왜놈들이 요서지방에서 발견된 유물을 구입하여 평양 발굴 유물로 위장했을 가능성이 있다. 실예로 점제현은 평안도 평강이 아니고, 수양제의 침략경로 우12군 첫 번째 경로에 있는 점선(점제현)이다. 이병도는 점선현(점제현)점선이라 표기하지 아니하고 점제로 표기하면서, 왜놈들이 점선(점제현)에서 가져다가 평안도 용강에 위계 왜곡으로 설치한 점제현(점선현) 신사비를 자신의 책자에 인용하여 왜놈들의 역사왜곡에 동조하여 나라 역사를 팔아멱은 놈이며,

 

낙랑군의 주현인 조선현이 평야이었고, 낙랑이 평양이라고 이병도란 놈은 주장했지만, 조선현은 삼국사기 기록에 수양제의 침략경로에 있던 현이며 지금의 진황도시 동쪽에 있던 현이고 결코 평양이 아니었다. 호동왕자가 비류수에서 낙랑왕을 만났고 그 부군에 낙랑이 있었는데, 이 낙랑국도 이병도란 놈이 말하는 압록강 중류 동가강 지역이 아니라, 요서지방 관구검이 처음 침략한 땅이다. 낙랑군 역시 수양제 침략경로이므로 낙랑국이나 낙랑군이나 모두 요서에 있던 땅이며, 이병도란 놈이나 그 추종자놈들이 주장하는 평양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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