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대업을 집행하는 강력한 일꾼

[종도사님 말씀]
132년 양력 4월 7일,증산도대학교

포교오십년공부 종필이란?


상제님이
"포교오십년공부 종필"
이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세 가지 의미다.
상제님이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시는 데도 포교오십년공부의 명제를 가지고 오셨다.
그 첫 번째 마디가 상제님이 인간으로 오신다는 걸 선포케 하신 최수운 대성사의 도통사건이다.
최수운 대성사가 경신(1860)년 음력 4월 5일날 도통을 받았다. 그러고 '내가 상제님으로부터 도통을 받았다, 상제님이 인간으로 오신다, 다시 개벽 아니냐, 무극대도가 나온다. 앞으로 3년 병겁 심판이 있다.' 이런 핵심내용을 『동경대전』에 기록했다.
이 최수운 대성사가 "상제님이 오신다!"고 선포한 해(1860년)가 포교오십년 공부의 첫 해다. 그리고 상제님이 직접 인간으로 오셔서 우주개벽공사를 보시고 개벽의 도를 마무리짓고 천상으로 올라가신 해(도기 39년, 기유, 1909년)가 마지막 해이고. 그게 정확하게 50년이다.

포교오십년공부의 말뜻을 깊이있게 잘 알아야 된다.
왜 포교인가? 왜 50년인가?
50이란 수를 들여다보면, 50은 5 곱하기 10 아닌가. 그럼 생각나는 게 뭔가?
15수, 진리의 주인이 나온단 말이다. 진주노름 말이다.
이 15수라는 것은 오행원리로 5·10토거든, 5토 10토. 음양기운을 잡아돌리는 조화기운이 토인데, 그것조차도 음양으로 구성돼 있다.

두 번째는, 상제님이 열어주신 후천 오만 년 선경세계로 가는 다리, 새 생명을 내려주는 도신주道神呪인 태을주가 이 세상에 출산되는 데 걸린 50년을 뜻한다. 김경흔 대성사가 태을주를 받고자 50년 동안 공부했다. 즉, 태을주에도 포교오십년공부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 다음 후천선경을 건설하는 포교오십년공부의 세 번째 관문은, 제3변 마무리 도운에 붙어있다.
상제님이 '포교오십년공부'에 '종필'이라는 두 글자를 더 넣어주셨다. '포교오십년공부'가 '종필'이 된다는 말씀이다.
상제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 준비하신 제1관문인 포교오십년공부와, 개벽기에 선후천을 매개해주는 유일한 구원의 법방인 태을주의 포교오십년공부가 있는데, 이제 마지막 제3의 포교오십년공부는 그것을 마무리짓는다는 의미로 종필이다.
그럼 그게 누구에 의해서 종필인가?
상제님 일꾼들 아닌가, 상제님 일꾼들.
그런데 왜 종필인가?
지금은 이것을 깨놓고 알려 줄 수가 없다. 깊이 생각해 보라!


겸손이 가장 큰 미덕


상제님 일을 함에 있어서 누구에게도 친절하게 대하면, 그게 말할 수 없는 축복이 되어 포교도 잘 되고, 뜻밖의 행운을 안겨다준다.

'상제님 진리만 받들어준다고만 하면 누구에게도 절을 하겠다.' 이런 마음이 돼야 한다. 자기 부모님이 됐든 아래 동생이 됐든, 친족이 됐든 친구가 됐든, 상제님만 잘 믿어준다고 하면, '아, 참 고맙다. 너한테 절을 하고 싶다.' 그리고 '비오는 날 흙탕물에 옷이 다 젖더라도 땅바닥에서 너한테 절을 할 수 있다.' 이런 마음이 있어야 된다.

인존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미덕은 겸손이다. 나를 낮추란 말이다.
그렇다고 시도 때도 없이 낮춰서 바보처럼 행세하라는 게 아니다. 말을 좋게 해 주고, 항상 내가 말실수를 하지 않았는지,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았는지, 그런 걸 생각해 봐야 한다.


상제님 천하사에 생각을 집중하라


상제님 천하사를 하는 데에, 우리의 창조적인 역량을 총동원해서 비상한 방법을 취해야 한다. 즉 이 지구촌 창생을 건지는 데 우리의 정신을 집중해야 된다.
생각이 통일돼 있지 않으면,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없다. 인간의 창조적인 행위라 하는 것은 '생각'을 통해 이뤄지는 거다. 그 한 생각에서 인간의 새 역사가 열린다.


상제님의 조화권


『도전』에 나오는 호연이와 상제님을 보면, 할아버지와 손녀딸 아버지와 딸과 같이 참 다정하다. 그리고 참 재미있다. 때로는 마치 코미디극에 나오는 한 장면 같다. 상제님이 남녀 속옷 공사 보시면서, 막 거꾸로 물구나무를 서시지 않는가.
또 상제님이 호연이를 매미로도 만들고, 거미로도 만들고, 강아지로도 만들어 품고 다니셨는데, 지금 사람들이 이걸 이해 못 한다. 그래서 조작한 이야기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정도는 상제님의 조화 세계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

상제님은 도통하시기 전에 고향 마을에서 호랑이로 둔갑하신 적이 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걸 보고, 상제님이 호랑이한테 잡아먹힌 줄 알고, 놀라서 상제님 아버지한테 달려가 알렸다.
홋날 상제님이 "내가 어린 시절에 호랑이로 둔갑해봤더니 전부 사람이 개나 짐승으로 뵈더라."고 말씀하신다. 그게 상제님 어린시절 얘기다.

상제님은 원래 모든 일을 뜻대로 하시는 조화옹 하나님이시다. 그래 세상에 오실 때 여의주를 가지고 오셨다. 돌아가실 때 호연이에게 그러시잖는가. "내 얼굴이 기억 안 나면 이 여의주를 생각해라."고.

또 상제님이 옥피리를 불면, 성도들이 새로 변해서 나무를 날고, 나무신도 와서 상제님 앞에서 사람처럼 춤을 춘다.
상제님은 우주 만물 속에 깃들어 있는 생명의 실체인 신을 불러내어 명을 내리신다. 그게 저런 산에 사는 신일 수도 있고, 나무 속에 있는 신일 수도 있고, 돼지 같은 짐승의 신일 수도 있다.
돼지를 잡으려면, 성도들은 동아줄로 돼지를 묶고 칼이나 몽둥이 들고 날뛰지만, 상제님은 그게 아니다. 상제님이 글씨를 써서 불사르시면, 돼지의 몸에서 신이 떠나 한순간에 돼지가 죽는다.
상제님은 조화옹 하나님으로, 신을 부르고 신에게 명을 내리시는 분이다. 상제님이 명만 내리시면 그게 금방 짐승도 되고 뭣도 되고 한다.
사람들이 이 조화문화를 모른다.
앞으로 오는 후천문명은 인간의 생각에 의해 바꿔질 수 있는 조화문화다. 인간이 마음대로 틀을 바꿔놓을 수 있는 문화.
이건 도를 닦아서 천지의 조화세계에 눈뜨지 못하면, 결코 알 수가 없다.

청수 안 올리는 사람, 주문 안 읽는 사람, 『도전』 안 읽고 진리의 틀을 모르는 인간은 조화옹 하나님인 상제님의 정체를 모른다.

상제님 진리의 틀을 통독해서, 쉬운 말로, 자유자재로 상제님의 진리를 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