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님 도의 역사과정을 중히 여기라

[태상종도사님 말씀]
道紀 132년 양력 4월 7일, 증산도대학교


상제님의 강세는 필연적인 역사섭리


오늘 이 시간에는 그 동안에 내가 여러 천 시간 교육시킨 것을 묶어서, 우주에서 인간농사를 지어 추수를 하는데 어떻게 해서 상제님이 이 세상에 오시게 됐는지, 또 우리 성도들의 사명은 무엇인지에 대해 한 마디로 얘기해 주려고 한다.
상제님 신앙하기가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멋모르고 5년 신앙했다, 10년 신앙했다고 하는데, 그런 신앙의 역사만 유구한 게 아니다. 우주의 법칙도 그렇고, 천지에서 우리가 신앙하는 것 백 배 이상 정성을 들이고 있다.
상제님도 그렇게 둥글어갈 수밖에 없는 우주원리에 준한 필연적인 역사섭리에 의해 이 세상에 오셨다. 이 하추교역기에는 필연적으로 - 필연이라면 반드시 필必 자 그럴 연然 자다 - 꼭 그렇게 되어지고, 그렇게 되어지지 않을 수 없는 법칙에 의해 상제님이 오셔서 인간 역사를 마무리지으시는 것이다.


상제님의 강세 배경


거듭 얘기하거니와, 상제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연이 아니다.
상제님이 이 세상에 오시지 않으면 안 되는 역사섭리와 이 세상에 오시기까지의 과정을 묶어보면, 무형인 우주변화법칙은 그만두고도, 우선 지금으로부터 1,200여 년 전에 진표眞表라고 하는 불자가 있었다. 진표가 "미륵님 뵈어지이다." 하고 생명을 건 구도 끝에 미륵님을 친견했다. 불자들에게 부처는 하나님이다. 그 잔소리 같은 얘기는 시간도 없고 우리 신도들이 다 아는 거니까 약한다.
해서 진표가 미륵님의 계시에 의해 전북 금제군 금산면 금산사에 미륵불을 조성했다. 허면 1,200여 년 전에 이미 상제님이 이 땅에 오신다는 것이 진표율사와 약속돼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런 과정을 거쳤고, 또 다른 게 있다.
420년 전에 이마두(마테오 리치)라는 카톨릭 신부가 중국 땅을 밟게 됐다. 이마두 신부가 서른 살 먹어서 인도를 거쳐 중국에 와 가지고 필생토록 카톨릭 선전을 했다. 동서양 문화라는 게 그 때부터 서로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마두 신부가 무슨 진리를 들고 나와 개창한 분은 아니지만, 그 분의 공로는 어느 성자 못지 않다. 인격적으로 공자, 석가보다 나은 분이고 오히려 예수보다도 더 나은 분이다.
그는 죽어 신명이 돼서도, 신명이라는 신명은 다 만나보고 동서양을 넘나들면서, 또는 우주공간의 딴 성좌도 넘나들면서, 어떻게 하면 인류 복지를 위해 좋은 일을 하겠는가 그 방법을 모색하였다.
그렇게 쫓아다니면서 인간 생활문화에 도움되는 것이 있으면 지상의 과학자들에게 알음귀를 열어주어 문명을 발달시켰다.
했는데 이마두 신부의 말대로 오히려 사람들이 잔폭해지고 더 못돼진다.
『도전』에는 그런 걸 자세히 쓰지 않았지만, 이마두 신부가 동서양 신성 불보살들과 회합도 해보고 별 연구를 다 해봤다. 허나 자기네들 능력으로써는 인간세상을 이화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전부 뭉쳐서 우주의 주재자 참하나님께 등장해서, 거기서 무슨 대책을 창출하는 수밖에 아무런 방법이 없다.'
이렇게 해서 상제님께 찾아가 하소연을 한 것이다.
상제님도 "이마두가 모든 동서양 신성 불보살들을 거느리고 내게 와서 하소연하므로 괴롭기는 한량없으나 어찌할 수 없이 이 세상에 오게 됐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그게 바로 상제님이 이 세상에 오시게 된 배경이다.


상제님 세상을 예고한 시천주 주문


그러고 상제님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오신 게 아니다.
상제님 말씀을 봐라.

내가 서양 대법국 천개탑에 내려와 이마두를 데리고 삼계를 둘러보며 천하를 대순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 중 진표가 석가모니의 당래불當來佛 찬탄설게讚歎說偈에 의거하여 당래의 소식을 깨닫고 지심기원至心祈願하여 오던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30년을 지내면서 최수운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였더니 수운이 능히 유교의 테 밖에 벗어나 진법眞法을 들춰내어 신도神道와 인문人文의 푯대를 지으며 대도의 참빛을 열지 못하므로 드디어 갑자甲子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辛未년에 스스로 이 세상에 내려왔나니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수운가사水雲歌詞에서 말하는 '상제'는 곧 나를 이름이니라. (道典 2:27:4∼9)

내가 근래에 와서 최제우의 시천주 주문에 대해 한 두어 축 얘기한 사실이 있다. 그걸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최제우가 여기 논산군 양촌면이라는 곳에서 연담蓮潭 이운규李雲圭라고 하는 도학가 밑에서 김일부 선생과 같이 동문 수학을 했다.
그래 김일부 선생은 정역正易을 지어내고, 최수운은 상제님에게 신통神通을 받았다. 김일부 선생은 광산 김씨로서 출생지는 양촌면 남산리이고 최제우 수운 선생은 경주 최씨로서 경북 월성군에서 출생했다. 김일부 선생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후손이고, 최수운 선생은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의 후손이다. 혈통을 얘기하면 그렇게 돼 있다.
최수운 선생은 양산에 있는 천성산千聖山에서 수도를 했다. 저 통도사 있는 곳. 그의 이적을 더듬어보면, 도통을 하기 위해 그는 암자에서도 공부하고 굴속에서도 공부했다. 헌데 전부 실패했다. 도통이란 게 그렇게 해서 되는 게 아니다.
그러다 경주 용담에서 공부하던 중 상제님께 신통을 받았다.
신통이란 게 그렇다. 표본적으로 태모님이 신해辛亥(1911)년에 상제님 어천 치성을 모시고 차경석 성도 집 뜨락에서 기절해 죽어넘어 갔다가 한참만에 일어나신 적이 있다. 공부도 안 했건만 도통을 받으신 것이다. 신통은 그렇게 천지에서 내려주는 기운을 받아 도통하는 것이다.
최제우가 신통을 하고는, 앞으로 이 세상 역사가 어떻게 둥글어간다는 것과 천지 자연섭리, 그리고 상제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후천 새 문화를 만들어 새 세상을 조성하신다 하는 걸 알게 됐다.
그래 그걸 묶어서 글자로 만든 것이 '시천주侍天主 조화정造化定 영세불망만사지永世不忘萬事知'다. 시천주, 하나님을 모시고, 조화정, 조화를 정하니, 영세불망만사지, 만사지 문화를 개창해서 후천 오만 년 좋은 세상 만들어주는 은총을 영세토록 잊지 못한다는 뜻이다. 글자 열석 자에 자기의 사명과 앞으로 역사 판도 이루어질 것을 다 담아놨다.


최수운의 기운을 거두고 오심


헌데 우리나라 이조 오백 년 문화라는 게 제도적으로 유교의 틀 속에 정해져 버리지 않았는가. 최수운이 그런 유교의 틀 속에서 성장한 사람이 돼놔서 그 고린 유학자 기질을 탈피 못 했다.
최수운이 상제님한테 신통 받은 때가 경신庚申(1860)년 4월이다.
상제님이 미륵전에서 최수운이 일하는 걸 다 지켜보고 계셨다. 헌데 보니까 큰 도움될 짓을 못 해서 아무 짝에도 소용없게 생겼단 말이다. 해서 갑자甲子(1864)년에 그 기운을 거둬 버리셨다.
경신 신유 임술 계해 갑자, 신통을 내려준 해부터 기운을 거두신 해까지 5년, 만 4년이다. 갑자년에 최제우가 대구 달성 공원에서 대원군에게 참형을 당한다.
상제님이 최제우의 도통기운을 거두고, 그 8년 후에 이 세상에 오셨다. 갑자 을축 병인 정묘 무진 기사 병오 신미, 상제님이 신미辛未(1871)생 아니신가. 최제우 선생은 이미 '더디도다, 더디도다, 무극대도가 8년이 더디도다' 하고, 8년 후에 상제님이 강세하실 것을 다 얘기했다.
상제님이 참하나님의 위치에서 인간의 몸을 빌어 이 세상에 오시는 데에도 그런 허구많은 난관을 거치셨다. 그러고 원시반본 진리에 의해 강씨 문중으로 육신을 빌어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