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란兵亂과 병란病亂이 함께 온다
[종도사님 말씀]
132년 양력 3월 28일, 울산지역 대강연회
지난해 가을 울산지역 증산도 대강연회 때, 머지않아 문 여는 이 롯데호텔에서, 다시 한 번 상제님 개벽문화에 대해 말씀 듣기를 고대한다는 이 곳 상제님 일꾼들의 요청을 받고, 그 자리에서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먼저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그대들 모두 이 땅에 오신 강증산 상제님의 대도 말씀에서, 인간이 반드시 풀고 가야하는 진리의 근본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음으로써, 새로운 생의 전환점을 맞이함은 물론, 다 함께 상제님과 삼생의 인연 맺기를 축원합니다.
자연개벽, 문명개벽, 인간개벽
흔히 "머지않아 개벽이 온다."고 하는데, 개벽이란 무엇인가?
쉽게 말해서, 개벽은 동양문화에서 말하는 창조론이다. 본래 서양의 창조라는 말에 대응하는 동양의 언어가 개벽이다. 곧 서양에서 "태초에 이 우주가 창조되었다."고 하는 데 대해, 동양 사람들은 "태초에 이 우주가 개벽되었다."고 한다. 우주가 개벽되었다, 열렸다는 말이다.
태초에 하늘과 땅이 열려서 오늘과 같은 모양으로 이뤄진 것이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백여 년 전에, 인간으로 오신 우주의 주재자 하나님인 증산 상제님에 의해, 처음으로 종합적인 자연개벽과 인문개벽과 인간의 심법을 여는 인간개벽이 선언되었다.
상제님은
"선천은 삼계가 닫혀 있는 시대니라. 그러므로 각국 지방신(地方神)들이 서로 교류와 출입이 없고 다만 제 지역만 수호하여 그 판국(版局)이 작았으나 이제는 세계통일시대를 맞아 신도(神道)를 개방하여 각국 신명들이 서로 넘나들게 하여 각기 문화를 교류케 하노라."
(道典 4:6:1∼3)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 그대로, 그 동안 하늘과 땅과 인간세상과 신명계가 개방되질 않았다. 그래서 인간이 신명을 모르고 인간이 제 마음을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모른다. 그러나 이제 천지가 가을운수로 들어서면서 통일시대를 맞이하였다.
따라서 증산도에서 말하는 개벽문제는 기성종교에서 외쳐 온 단순한 종말론의 차원을 넘는다. 개벽은 우주의 자연질서와, 인간 문명과, 인간 생명의 본성인 마음의 문을 어떻게 여느냐, 쉽게 말해서 인간이 어떻게 궁극의 도통문화를 여느냐 하는 근본 명제를 안고 있다.
선천에는 도통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웠다. 하지만 앞세상에는 그게 완전히 바뀐다. 누구나 다 닦은 만큼 도통을 한다.
후천개벽의 본질 문제
개벽이 온다, 종교적 철학적 용어로 후천개벽이!
그러면 그 개벽의 실제 대사건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또 개벽이 올 때는 어떤 변혁이 일어나는가? 왜, 무엇 때문에 개벽이 일어나는가? 그리고 그 개벽상황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그 동안 기존의 기독교나 불교에서 말해온 인간의 삶의 문제, 그 핵심이 무엇인가? 원죄나 업, 선과 악, 그런 게 인간 문제의 근본인가?
물론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 그것을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제기한 분이 있다. 누구인가?
바로 132년 전에 이 땅에 강세하신 우리 증산 상제님이다.
자, 증산 상제님의 말씀을 보자.
선천에는 상극의 이치가 인간 사물을 맡았으므로 모든 인사가 도의(道義)에 어그러져서 원한이 맺히고 쌓여 삼계에 넘치매 마침내 살기(殺氣)가 터져 나와 세상에 모든 참혹한 재앙을 일으키나니 (道典 4:14:2∼3)
상제님은 인간의 원과 한을 가장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그리고 인류역사를 관통한 인간의 문제로 말씀하고 계신다.
따라서 상제님의 개벽문화에서 말하는 인간의 행·불행의 근원은, 단순히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다! 원과 한의 살기가 이 천지에 꽉 들어차서, 그것이 터져 나와 세상의 모든 참혹한 재앙과 불행을 만들고 있다. 아, 비행기가 떨어지는 것, 자동차가 박치기하는 것, 어떤 집이 화재로 폭발하는 것, 그게 전부 인간으로 살다가 천고의 원과 한을 맺고 천상으로 간 신명들이 인간에게 붙어서 일으키는 거란 말이다.
이것이 증산도에서 제기하고 있는 후천개벽의 본질적인 문제다.
원과 한이란
그럼 이 원과 한의 속성은 무엇인가?
모든 생명의 본성은 지속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영원히 살고자 하는 것이다. 당장 죽고 싶다고 하는 이들도, 폭탄이 떨어진다고 할 때, 가만히 앉아 참혹한 죽음을 기꺼이 맞겠노라고 만용을 부리는 자는 없다. "어이쿠" 하면서 순간적으로 살려고 발버둥친다.
인간 생명의 꿈인 행복과 건강! 그것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인간에게는 원과 한이 맺힌다. 특히 외부의 억압이나 폭력, 전쟁과 같은 극히 강력한 파괴적인 수단에 의해 생명을 그르치게 되면, 인간은 원통함을 느낀다. 원寃은 남에게 일방적으로 당해서 가슴 아픈 걸 말한다.
또 세월이 흐르면서 그것이 가슴에 깊이 맺힐 때, 한이 남았다고 한다. 한은 '맺힐 한' 자다. 내 가슴에 내 마음에 깊이 맺힌 덩어리, 병증病症이다.
원통한 것은 개별적이고 개인의 삶과 역사 환경에 따라, 자연 환경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한이라는 건 보편적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맺힌 게 있다.
지금 이 원과 한의 문제를 놓고, "아, 나는 좋은 집에 태어나 배부르게 잘 먹으며 즐겁게 살고 있으니까, 또 사업하는 것 잘 돌아가니까, 그런 건 내가 알 바 아니다. 원과 한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지, 원과 한이 없는 인간이 어디 있나!" 이렇게 얘기하고 넘어갈 게 아니다.
민족이나 국가, 동양·서양을 떠나, 인류의 역사 속에서 정말로 잊혀질 수 없고 용서될 수 없는, 충격적인 원한을 깊이 맺고 죽어간 비극의 주인공들, 그 고통의 실상을 한번 들여다보자.
지난 4백 년 동안 유럽에서 노동력 차출이라는 미명으로, 아프리카 흑인을 잡아다 노예로 만들고 잡아죽인 숫자가 6천만이 넘는다.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아미스타드>란 영화를 보면, 아프리카에서 흑인이 백인의 앞잡이가 되어, 같은 흑인을 짐승 잡듯 잡아다가 노예로 팔아 넘긴다. 그러고 망망대해를 가다가, 그들이 병들거나 노동력을 상실하면 참담하게 죽인다. 자, 영화를 보면서 그 고통의 순간으로 들어가보자.
(영화감상)
이 흑인들의 하늘을 찢는 절규! 죽음의 순간에 외치는 처절한 외마디 비명소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천지 안을 떠돌고 있다.
이 원과 한도, 고통의 밀도에 따라 용서될 수 있는 게 있는가 하면,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깊고 깊은 게 있다. 이 원한의 실례는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이렇게 처절하게 죽어간 인간의 원한의 고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증폭된다. 여기에 인간의 증오의 문제가 있다! 여기에 보복의 문제가 있다! 그것을 한 글자로 척隻이라고 한다, 척!
증산 상제님이 '이 세상을 사는 인간으로서 가장 행복한 사람, 잘 사는 사람이 누구냐?'에 대해 말씀해주신 만고의 멋진 명언이 있다.
"상말에 '무척 잘산다' 이르나니 '척(隻)이 없어야 잘산다.'는 말이라."(道典 2:79:1)
"무척 잘산다."에서 '무척'은 '대단히'라는 뜻으로 들리지만, 본래 그 속뜻은 '남과 척이 없다. 남으로부터 미움 사는 게 없다'는 거다.
그러니 좋게 살아야 된다. 좋게! 덕을 베풀면서! 그렇지 않고 남 잘 되는 것 못 보고 해코지를 하면, 반드시 그에 대한 악척을 받아 생을 좋게 마감할 수 없다.
선천 인류역사라는 것은 악척의 역사다. 피의 역사요! 보복의 역사요, 저주의 역사다. 문명사로 보면 전쟁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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